엘리자베스 워첼의 좀 횡설수설 말도 많고 비약도 많고 무리한 전개도 많지만 어쨌든 재미 하나는 있는 <비치(Bitch)>를 오랜만에 읽으며 쓸데없이 네타나 줍다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돌발적으로, 그리고 졸 새삼스럽게 깨닫고야 말았다.
미친년 모에는 비단 19세기에 국한된 게 아니었으며 유사 이래 실로 유구하기 그지 없는 전통이었다는 사실을.
아 글쎄 바드 영감부터가
광년이 모에의 절대적인 조건.
하나, 어떤 방향이든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
둘, 졸라 매력적으로 돌아야 한다.
셋, 무언가 뛰어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
넷, 빨리 죽으면 매우 좋다(......).
다른 글은 안 써지고 일은 많은 김에 (야 이뇬아;) 온갖 종류의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제정신과 미친 상태에서 방정맞게 널뛰질을 했던 광년이의 20세기 업데이트 버전을 내 취향대로 쭉 모아봤다. 눈보신 용으로(.....).
...근데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가 귀찮다;고 안 넣었다 뿐 실은 그레타 가르보도,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주디 갈란드도, 마릴린 먼로도, 빌리 할러데이도, 제니스 조플린도 방향이 다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맛이 살짝 간 영 좋지 않은 상태였다(......). 더 솔직히 까놓고 말해 여성 아티스트들치고 우울증에 안 걸려봤다는 사람이 도대체 안 보이지 말입니다 이쯤 되면 안 미친 여자 목록을 만드는 게 더 빠를 지경이지 말입니다; 실상은 사람들이 미친 미녀들에게만 오만 관심을 다 쏟아부어서 그렇겠지만. 오 이놈의 더러운 광년이 모에. 적어도 남자들은 이 분야에서는 결코 여자를 이길 수 없다. 커트 코베인을 비롯해 세상 모든 미치광이들에 대한 자료를 다 끌어모아도 내가 대충 헤아린 여자들 중 두서넛에 바쳐진 헌사와 영화와 전기와 음악과 기타 등등만으로 다 찍어눌러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사진만은 더럽게 화사하다. 그건 장담한다. 요즘 어쩐지 자꾸 사진으로 땜빵하는 것 같은데 지적하시면 슬픕...쿨럭!
예쁜 건 '어쨌든' 좋은 것이다-_-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미친 여성예술가의 대명사.
연속극 열 편은 족히 써내려갈 '소위'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불과 서른 살 나이에 자고 있는 두 아이를 옆방에 둔 채로 하필이면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자살해 버리는 통에 실비아 플라스가 뭘 썼고 어떻게 살다 갔는진 모르는 사람도 그녀가 무슨 수로 죽었는지만은 알고 있지어라. '아 실비아 플라스, 그 희한한 방법으로 자살한 여자 말이지?' (.....) 평생 얌전한 모범생으로서 뭐든 잘 해내야 한다는 지독한 강박관념에 시달렸고 끓어오르는 창작의 욕구와 한 멋진 남자의 사랑받는 아내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조용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미쳐갔다. 테드 휴즈와의 결혼 생활은 그녀에게 안식을 주기는커녕 정신적 문제만 다발로 안겨주었고 전쟁을 방불케 하는 소동 끝에 그들은 별거에 들어갔다(플라스의 친구와 바람이 났다고 한다. 어째 예술가 부부가 파경 맞는 코스는 다 똑같더라. 이래서 예술하는 남자하고는 살지 말라고 했나 보다-_-).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제 삶을 득득 갉아먹어가며 시를 쓰고 쓰고 또 쓰다 삶을 지탱할 마지막 기력까지 소비하고 마침내는 오븐의 문을 열어젖혔다. 플라스의 지인은 그녀의 자살을 '도움을 요청하는 대답없는 메아리(unanswered cry for help)'라 했다던가. 그리고 덕분인지 뭔지 실비아 플라스 효과(Sylvia Plath Effect)라는 엄청난 개념까지 생겨버렸다.... 작가들이 유독 정신병에 시달리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랜다. 하지 마.
현재 나는 같이 미치는 기분을 느끼며 플라스의 유일한 소설 <벨 자(Bell Jar)>를 읽고 있다...... 오 젠장.
앤 섹스턴(Anne Sexton)
미친 여성예술가의 대명사 2. 단 플라스가 얌전한 광년이었다면 섹스턴은 지대로 미친뇬이었죠 예(.....).
졸 아름답고 화려하고 자유분방하고 못돼쳐먹고 지랄맞고 우울하고 정신은 허구헌날 주책맞게 오락가락하는 그야말로 '현대 시인의 대명사'. 대략적인 설명만 들어도 한 지붕 밑에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은 결코 아니다. 아니지만, 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에이 저렇게 이쁜데 아무렴 어때....하는 벼락맞을 생각부터 드는 걸 보면 오호라 이것이 외모지상주의의 폐해인가.
평생에 걸쳐 얼마나 죽으려고 기를 썼는지 플라스가 기어코 멋지게(....) 자살을 해냈을 때 담당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실비아 고 계집애가 내 죽음을 뺏어갔네 그건 내 거였네 울고 불고 개지랄을 했다고 한다(....). 뭐 딸의 대학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수면제 한 병을 홀랑 다 마셔버리고도 못 죽으니 그대로 드레스 입은 채 강둑에서 한 마리 광년이처럼 춤춘 적도 있다던가;;;; 그예 차고에 틀어박혀 시동을 켜놓음으로써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는 데 성공한다. 향년 마흔 다섯.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an)
정줄놓은 여성예술가의 대명사.
그녀는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파격적이고, 무자비하고, 비상식적이고, 방종하고, 제멋대로이고, 막 나가고, 스캔들제조기였다. 더 이상 말이 必要韓紙? 심지어는 죽기도 지나치게 극적으로 죽었다. 스포츠카에 타고 "안녕 친구들, 나는 영원을 향해 떠나요!" 라고 외치면서 스카프를 뒤로 날렸다가.... 그놈의 스카프가 바퀴에 걸려서 목이 부러졌죠.....
젤다 피츠제럴드(Zelda Fitzgerald)
맨정신으로 호텔 분수에 뛰어들고 하루 왼종일을 술에 쩔어서 살던 여자, 무절제한 사치와 방종, 파격과 타락, 조울증과 분열증, 절망과 좌절, 그리고 정신병으로 떡칠된 삶을 살다 간 여자가 광년이가 아니라면 누가 광년이라는 겁니까(......).
비비안 리(Vivien Liegh)
그녀는 로렌스 올리비에 경을 포함하여 그녀를 사랑했던 모든 남자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기도 같이 떨어졌다(........).
심지어는 폐결핵으로 죽었다. 너무 완벽해서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다;
프란시스 파머(Frances Farmer)
성질이 개더럽기로 유명하더니 그예 폭행사고를 일으키고는 조울증 진단을 받아 온갖 무식한 치료의 희생자가 됐다가 (1940년대다...) 막판에는 반강제로 전두엽 절제 시술을 당해 거의 폐인이 되었고 잊혀지는가 싶었으나 그예 '헐리우드 시스템에 짓눌려서 미친 비운의 여배우'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비극적인 삶이 취향 고약한 인종들을 매료시킨 탓에 미라 소르비노가 찍은 듣기만 해도 좀 미친 것 같은 트리뷰트 사진도 유명하고, 심지어 너바나는 <프란시스 파머는 시애틀에 복수하리라(Frances Farmer Will Have Her Revenge on Seattle)>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She'll come back as fire / And burn all the liars / leave a blanket of ash on the ground. 코베인은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딸한테 프란시스의 이름을 붙여줬다나 어쨌다나.... 아저씨 그만해;
진 티어니(Gene Tierney)
사실 헐리우드의 아이스 퀸 진 티어니의 불행은 본인의 정신상태보다는 남 탓이 커요. 아니 이건 정말 남 탓이다.
첫째 딸 다리아를 임신했을 때(1943년) 티어니는 한창 미군 위문공연 중이었는데 그만 원인 모를 풍진에 걸려버렸다. 딸은 미숙아로 태어나 전신교환수혈을 받았고, 그뿐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었겠지만 눈이 멀고 귀가 먹은데다 정신지체아 판정까지 받아 치료소로 보내졌다. 티어니는 충격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지독한 조울증에 시달리면서 몇 년간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여기까지라면 그래도 불운으로 생각할 수 있었겠는데, 수년 후에 티어니가 어느 파티에 참석했을 때 여성팬이 접근하더니 40년대 초반에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여배우의 위문공연을 보려고 풍진에 걸린 채로 몰래 격리소를 빠져나왔다 자랑했다고 한다! 티어니는 오래도록 그 여자를 말끄러미 노려보다가 말없이 자리를 떴다던가. 크리스티 여사의 걸작
<깨어진 거울(The Mirror Crack'd from Side to Side)>(스포일러 방지)은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진상까지 가면 진심으로 열이 뻗쳐 머리가 곤두선다.
진짜로, 팬질은 작작하자.
리타 헤이워스(Rita Hayworth) aka 길다(Gilda)
이쯤 되면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졸 강인한 바바라 스탠윅만 빼고 클래식 헐리우드 시대의 아름다운 여배우들은 하나같이 우울증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다 빠져죽은 것 같다; 오슨 웰즈나 알리 칸 따위(....)와 결혼을 했으니 사생활이 행복할 리는 당연히 없고(.....) 미모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배우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그리고 본인의 소심함과 수줍음 때문에 더더욱, 우울증과 고질적인 불안감과 정서불안에 시달렸다. 위의 사진은 헤이워스에게 불멸의 명성을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배우로서의 불행을 동시에 안겨준 1946년도 영화 <길다(Gilda)>의 유명한 장면. 길다는 당시 필름 느와르 히로인 상(像)을 확립한 팜므파탈의 전형과도 같은 섹시하고 매혹적이며 또한 치명적인 여성이다. 저 장면에서 오페라 장갑 딱 한 짝 벗는 주제에 졸 관능적이라 하마터면 검열에서 짤릴 뻔했댄다; 한때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젊고 늙음을 가리지 않고 길다를 꿈꾸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래서 헤이워스는 지친 어조로 불평했다. "남자들은 길다를 사랑하고 나와 함께 깨어났다(Men fell in love with Gilda, but they wake up with me)."
이디 세즈윅(Edie Sedgwick)
앤디 워홀과 밥 딜런의 뮤즈였던 상속녀.
따지고 보면 28년의 짧은 생애 동안 술 마시고 마약하고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영감 주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지만(....) 바르비투르산염 과용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이 여자에겐 술 쳐마시고 취해서 늘어진 꼴도 매력적으로 보이고, 마약하고 멍때리는 꼴도 매력적으로 보이고, 마약하고 개지랄하는 꼴도 매력적으로 보이고, 심지어는 호텔방에 불 싸지른 후 화상입은 손에 붕대를 감고 인형처럼 앉아 있는 꼴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희유한 재능이 있었다(....). 그녀의 다크서클이 얼굴 중간까지 내려온 흡사 시체같은 미모는 실로 완벽하기 짝이 없었고,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여자 중의 여자 금발 중의 금발이라고 정줄을 놓고 칭송하며 울부짖었다..... 씨바 사진만 봐도 이쁘긴 정말 이쁘지 말입니다.
젤시 커클랜드(Gelsey Kirkland)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발레리나.
대부분 정줄이 오락가락하는 이들이 다 그렇지만 그녀의 집안사정도 거지발싸개 같았다. 도대체 이쪽을 봐주려 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소망에서 이를 악물고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과중한 부담으로 코카인에 손을 댔고 거식증 증세까지 보였으며 나날이 개차반같이 굴었고... 그 뒤는 예정된 수순을 밟았다;
지아 카란지(Gia Carangi)
생긴 대로 예측불허였고 태풍 같았으며 정줄을 항상 반쯤 놓고 있었던(...) 70말 80초의 수퍼모델. 생애의 3분의 1 이상을 마약에 취해 살았고 주사바늘을 돌려쓰다가 헤로인 중독자들을 덮칠 수 있는 가장 큰 부작용으로 손꼽히는 HIV 바이러스에 여지없이 감염되어 지옥을 향해 일직선으로 굴러떨어졌다. 잊혀질 뻔했지만 전기가 출판됨으로써 패션계의 추악함을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흔하다면 흔한 얘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녀의 마약에 쩔었던 스물 여섯 짧은 생이 사람들을 좀 지나치게 매혹시켜서(.....) 지아의 막가파 인생에 경의를 표하다 못해 똑같이 마약에 쩔어버리는 모델 무리, 일명 <지아의 여인들(Gia's Girls)>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덕분에 90년대 패션계는 병적으로 창백한 안색, 코끝까지 내려온 시커먼 다크서클, 대책없이 흐트러진 매무새(....엉?)로 대표되는 헤로인 시크-_-의 광적인 쓰나미에 휩쓸렸다(.....). 듣자하니 케이트 모스도 애초에는 이걸로 유명해졌다더라; 오죽하면 혹자는 '패션계가 마약밀매업자짓을 한 90년대'라고 투덜거릴까.
그리고, Last But Not Least.
이자벨 아자니(Isabelle Adjani)
그는 분개했어요. "아니 어떻게 미친 여배우 얘길 하면서 아자니를 빼놓을 수 있지!?"
나는 말했어요. "누가 빼먹었다는 거야 쓰바야-_-"
환장하도록 아름답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다루기 어렵고 괴팍하고 혼란스럽고 지대로 미친, 20세기 아닌 19세기에 태어났어야 할 프리마돈나. 프랑수아 트뤼포가 아니더라도 정줄놓고 헬렐레할 만하지 말입니다. 아자니 영화는 나름 제법 봤다고 생각하는데 데뷔작인 아델 H.의 이야기에서부터 포제션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봐도 도대체 말끔하게 살아남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녀는 결코 늙지 않는다.... 어느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거냐!
20세기는 아니지만 아자니가 환생했다고 해도 믿을 혼연일체의 연기를 펼친 김에, 보너스로.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
진・미친 여성예술가의 대명사. 그야말로 19세기식 미친 년의 롤모델이라고 해도 누가 뭐랄 사람 없을 거다.
다 제껴놓고, 까미유의 남동생 폴 끌로델이 그 시절치고는 상당히 늦게 결혼했는데 이유를 알 것 같다. 저런 천상의 미모와 지성과 예술적 재능과 열정과 언제든지 빠져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헐거운 안전핀까지 다 갖춘 여인이 누이인데 대체 어느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는 거죠. 거 그러잖아. 장동건을 보고 뭐야 별로 잘생기지도 않았네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려 남친을 봤더니 웬 오징어가 앉아 있더라고(......). 폴의 눈에 인간이 모두 감자나 고구마로 보였다 해도 난 이해하고 말고요.
이상, 셰익스피어 이후로 면면히 이어지는 뿌리깊은 전통과 역사의 광년이 모에 일단을 보셨습니다. 어느 취향 고약한 놈들이 이쁜 광년이에게 하악거린다고 해도 그건 트렌드의 일부일 뿐입니다 암은요. 나만 취향 더러운 게 아니란 말이다! 캬악!
그런데 소라치 놈은 뭘 잘못 주워쳐먹고 그 광년이 모에를
점프에서 남캐로 실현하고 있는 거죠? (...................)